똥파리(Breathless, 2007)


* 스포일러성 글임

양익준 특유의 신랄한 언어, 감성적 연출, 혼신의 연기로 탄생한 영화 <똥파리>- 각본, 감독,연기 1인 3역, <똥파리>의 양익준은 현실인지 허구인지 모를 영화의 늪으로 우리를 빠져들게 했다. 영화의 처음부터 "개새끼야"로 시작해서 욕도 정말 많이 나오는데 그것은 영화의 과장된 설정이 아니라 똥파리가 살고있는 지금, 현실이기 때문이다. 여자를 패는 남자도 패고 병신같이 맞았다고 여자도 팬다. 폭력은 그에게 숨쉬는 공기처럼 이질적이거나 머뭇거림 없는 자연스런 습관이다. 화가 나도 욕으로, 좋아도 욕으로, 거칠음으로..표정은 없고, 감정은 말라버리고, 심장은 얼어붙었다. 그의 충동적인 폭력은 폭력을 부르고 폭력은 다른 분노를 유발시킨다. 욕은 순발력이며 그 순발력 만큼 폭력도 정확하고 날카롭게 상대를 포박한다. 분노 때문에 그런 직업을 택한 것인지 할 줄 아는 것이 그것뿐이라 먹고 살기 위해 그런 직업을 택한 것인지 알수 없지만 그는 그 직업을 통해 분노를 폭력으로 풀어내며 앞날  없이 시간과 돈과 건강을 탕진한다.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악몽같은 과거 뿐 그에게 현실도 미래도 사라진지 오래이다. 이미 선을 넘어버렸던 아버지의 폭력을 용서할수 없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금은 아버지의 용서할수 없는 폭력대로 살아가고 있는 아들이지만 그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조차 모르는 듯 아무런 생각도 하려하지 않는다. 똥으로 양식을 삼고 똥냄새를 따라다니며 어떤 먹이를 먹어도 살아갈 수 있는 해충,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 똥파리. 그 해충과 닮았지만 상훈은 인간이다. 똥파리는 그의 습성이나 본질을 버리는 경우없이 똥파리로 살다 가겠지만 인간이 위대한 것은 비록 지금은 똥파리일지라도 언젠간 .. 그렇지 않을수도 있지만 .. 변할수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는다. 없는 동네의 사람들은 없어서 돈을 빌리고 돈을 갚지 못해서 용역 깡패들에게 두들겨 맞는다. 맞아서 상처 받게 되고 그 상처 때문에 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상처의 고리는 연결되어 아주 빠르고 빈틈없이 전달된다.
상훈이 아무나 뺨 때리고, 아무데나 침 뱉고, 욕을 입에 달고 살고, 폭력으로 돈을 벌고, 빠징코에 돈을 처바르고, 아무나 패고, 감옥에서 돌아온 원수 아버지를 패고, 그렇게 매일 애를 쓰며 되는대로 살아도 마음 속의 상처는 지워지지 않는다. 가장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마음의 상실은 회복될 수 없어 보인다. 불쌍하게 죽은 어머니가 살아올 리 없기 때문이다. 막다른 낭떠러지에 선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없이 꼬리를 물고 돌아간다. 숨이 막히고 답답하지만 아무런 해결책도 없고 누구도 해결하지 못 할 문제다. 영화는 똥파리의 현재로 시작해서 과거로 돌아갔다가 되돌아온다. 처음에는 한 악한의 이야기인가 했다가 그 악한의 환경과 상처를 엿보면서 그를 이해하게되고 호감도 생긴다. 어머니와 누나와 연희의 존재. 여자가 남자의 미래가 되는 것은 여자는 약하기 때문에 남자만큼 극한까지 갈수 없어서 이기도 하다. 또 미래는 있지만 희망이 없는 미래로 존재한다. 아버지군은 폭력의 원천이며 폭력을 행사하기만 하는 존재로 그려지며 아들은 피해를 보고 폭력을 답습해 미래 뿐만 아니라 현실까지 파괴하는 존재로 그려지고 어머니와 딸의 무리군은 참고 견디며 폭력에 노출되어 있어 희생되지만  긍정적이고 미래를 꿈꾼다. 희망없는 미래일지라도.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존재로 태어난 아들은 남자와 여자의 특징을 공통분모로 갖고 있다. 폭력으로 번 돈을 이복누나에게 갖다주고, 연희에게 심각한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상훈은 분명 상훈의 아버지와는 다른 성격이다. 어머니와 이복누나에 대한 동경과 사랑은 상훈의 안식처이며 희망이다. 연희의 존재도 그렇다. 거의 비슷한 환경에서 살고 있는 사람이지만 상훈과 연희의 삶의 자세는 상이하다. 상훈은 연희에게 기대고 연희는 자신의 문제가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남자의 아픔을 감싸줄 만큼의 힘을 갖고 있다. 상훈이 아버지를 아무리 구타해도 복수심은 잠재워지지 않는다. "살인에 값이 있냐? 사람하나 죽이고 빵에서 썩고 나오면 죄가 다 없어지냐?" 자살을 시도한 아버지를 업고 병원으로 가는 상훈은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는다. "이 씨X놈 죽여버릴거야, 진짜 죽여버릴거야, 죽지마, 죽지마...힘들어 죽고 싶어도 넌 살아야지..살아, 죽지마.." 마음 속의 복수심은 상대를 죽여도 상대가 없어져도 살아있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용서하는 그 시간이 바로 용서의 역사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내가 신이며 기준은 나이고 나 혼자 헤쳐나가야하는 세상에서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은 그가 비록 아버지라 할지라도 용서가 되지 않는다. 구원은 약한자에게로 부터 온다. 상훈이 처럼 건강하고 머리좋고 힘이 세다면 폭력이 잠시 구원의 방법처럼 보이기도 한다. 여자는 힘에 부치기 때문에 맞을 수 밖에 없어 폭력이라는 방법을 선택하지 못한다. 복수하고 싶어도 복수할 수 없는 존재는 용서를 먼저 배운다. 그것이 비겁한 자의 현실도피인지 임기응변식의 자기최면인지 모르나 그 약한 존재들의 마음 속에 평온이 먼저 찾아오는 것은 사실이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하는 일. 그것은 불가능이다. 혹 시간이 지나 잊혀지거나 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진다면 몰라도 .. 그것은 현실과의 타협이며 내가 살기 위해 선택하는 어려운 길일 뿐이다. 상훈이 가장 사랑하는 두 사람, 아버지와 어머니. 그 중의 한사람이 한사람을 괴롭히다 죽였다. 경계를 넘어서면 안되는 것이 있는데 아버지는 그 경계를 넘어 한참을 살았다. 다시 되돌아올 수 없는 너무 깊은 강을 건너면 죽지 않고서는 그 강을 되돌아 올수 없다. 그 경계선에서 똥파리 한마리가 살았다. 지치고 슬프고 괴로운 똥파리였지만 자신은 생각하지 않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무조건 폭력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며 그냥 살았다. 완전한 용서를 할수도 없었고 용서하는 시늉도 할수 없었고 완전한 보복도 할수 없었던 똥파리는 그 습성처럼 더러운 것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습관처럼 혹은 먹고 살기 위해 다가가며 똥에 앉았다가 똥을 빨다가 다시 날아올랐다가 다시 똥으로 내려앉았다. 그렇게 살다가 똥파리는 죽는다. 마지막에 상훈이 입은 진녹색의 윗도리는 똥파리의 화려한 금빛 찬란한 청녹색과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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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장미 | 2009/11/08 09:11 | 영화 | 트랙백 | 덧글(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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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잠자는코알라 at 2009/11/08 11:19
장미님 리뷰 인상깊게 읽었어요. 이 영화 한번 보고싶네요. ^^
Commented by 투명장미 at 2009/11/09 08:18
잘 만든 작품입니다만 시종일관 욕설과 폭력이고 마음 아픈 장면들이 많아요.
행복한 한주 되세요..코알라님^^*
Commented by 문디사과 at 2009/11/08 17:27
장미님의 심오한 폭력철학에 감탄을 하며
장미님의 잘나가던 과거를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조폭주부인지도.
Commented by 투명장미 at 2009/11/09 08:24
겸업을 할 정도로 능력있는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생각해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시금치 당근 멸치와 잘나가던 과거가 있었던 것도 사실입니다.
조폭마누라, 조폭아기는 알아도 조폭주부는 세계최초인 듯...
(이글 읽고 정말 많이 웃었습니다...웃을 일이 아닌데...왜케 우스운지..)
Commented by 문디사과 at 2009/11/09 23:07
겸손한 조폭주부시군요.
Commented by SiroTan at 2009/11/10 12:58
참 기획자의 의도를 잘 이야기 하시는듯.. 저도 이거 보고 찾아보게 되었어요.. 참 감질나지만.. 마지막은 역시나 좀 씁쓸하더군요..
Commented by 투명장미 at 2009/11/10 16:32
영화의 성격이야 어떻튼 해피엔딩이면 사실감이 떨어진다 하더라도 마음이 놓이는데
결국 다다를 목적지에 상훈을 데려다 놓았는데...마음이 좋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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