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렉팅 더 챔프(Resurrecting the Champ, 2007) by 투명장미



'작가도 복서와 똑같다. 혼자서 해야한다. 자신의 글이 출판되는 것은 링에 오르는 것 처럼 자기재능을 내보이는 것이다...숨을 곳은 아무데도 없다...'기자 에릭의 독백으로 시작해서 독백으로 끝나는 이 영화는 실화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것이다.
동네 청년들에게 얻어 터지는 챔피언이었던 밥 새터필드라는 겁 많은 노숙자는 걷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모두 권투선수의 그것이다. 오늘 어떠냐는 질문에 30%...아니 60%..컨디션의 상태를 퍼센트로 이야기한다. 왕년에 잘 나가던 챔피언을 우연히 만나게 된 에릭은 이 노숙자를 상대로 기사를 써서 위기탈출과 도약의 기회로 삼는다. 이 과정에 챔프의 과거 경기 장면이 간간히 나오는데 챔프는 자신 보다 상대편 킹 케이드에 대해 더 잘 알고 있다. 킹 케이드가 놀라운 감각과 강철 주먹을 가졌음에도 그를 이길수 없었던 이유는 상대에게 상처 입힐수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상대방에게 상처 줄수 없는 사람이 권투를 한다면 그가 지는 것은 당연하다.

한 사내아이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권투 챔피언으로 만들고 싶었다. 아버지는 폭력으로 다스려, 9살, 그 아이의 옆구리엔 큰 상처의 흔적이 남았다. 그 상처가 있는 사람은 킹 케이드이고 밥 새터필드가 아니다. 킹 케이드는 아버지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지만 아버지에게서 받은 상처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입히지 못하는 울타리 안에 갇혀 버렸다. 그는 챔프가 되고 싶어 자신에게 주문을 외우듯 밥 새터필드라고 외치고 살았지만 정작 동네 청년들에게 조차도 주먹으로 반격하지 못하는 못나 보이는 권투선수로 전락해 있었다.

전지전능해 보이던 아버지의 영광의 그늘에서 언제나 아버지의 환영을 뒤쫓으며, 아버지를 찾아가야 할지 아버지에게서 도망쳐야 할지도 모르는, 자신의 인생을 탕진하고 있는 아들 에릭이 있다. 에릭의 아들 테디의 눈에 비친 자신이 완벽해지길 원해서 과장해서 말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킹 케이드와 에릭은 아버지로 인해 인생이 비틀려 버린다. 그들은 영원히 자신에게로 돌아오지 못하고 가정마저도 저버리게 된다. 아버지가 준 상처에서 아버지의 환영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자들의 곁에 있던 아내들도 남편에게 실망하고 떠나 버리고 만다. 아버지가 바라는 것들은 그들 인생의 전부이며 어쩌면 그것이 남자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가혹하고 냉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일인자가 되지 못하면 살아있을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는 것일까. 일인자가 되지 않으면 아들에게 아버지로서의 가치도 없어지는 것일까. 권투 영화이면서도 시합의 피 튀기는 박진감이나 인간승리의 휴먼드라마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남자와 가족, 진실과 거짓말을 다룬 영화이다.
사무엘 L.잭슨의 연기가 인상적이며 조쉬 하트넷의 연기도 좋다. 
 





덧글

  • 문디사과 2010/01/15 22:40 # 답글

    도처에 아버지가 있습니다.
    선생, 사장, 중대장,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거세당한 채로 살아갑니다. 장미님도 마찬가지.
  • 투명장미 2010/01/17 08:12 #

    '남자는 아버지 때문에 거세 위협을 여자는 아예 없는 남근 때문에 거세 콤플렉스'
    제 생각으로 프로이트의 학설은 정신병을 치료하기 위해 시작된 연구이니 만큼 모든 기준을 거기에 둔다는 것은 조금 위험한 감이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이나 이기심을 위해 아들을 혹독하게 다루는 아버지나 상관들이 있을 수 있고
    혹은 자신의 욕망이나 이기심을 아버지를 모델로 맞추어가다 보니 비틀리는 인생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심리가 어디에서 출발되었는지 왜 그렇게 되었는지는 프로이트도 하나의 학설로 내세울 뿐이고 절대적인 것은 아닙니다. 현대를 지배하는 가장 타당성있어 보이는 학설일 뿐이죠.

    때로 좋은 아버지나 선생이나 사장이나 중대장이 있어 비틀린 인생을 바로 잡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언제나 거세 당하고 산다고 생각한다는 것은 일종의 피해의식이라고 보여집니다. 저는 피해의식이 강한 편이고 프로이트에 의하면 '자신의 성 자체를 포기하던지, 남성 성에 매달려 남성다워지려고 하든지'의 단계라고 봐야겠네요. 저를 분석하지 못하는 어떤이들은 저를 아주 '정상적인 여성', 여성스럽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에 대한 논쟁은 논쟁으로 해결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므로 언급을 회피합니다.
  • 문디사과 2010/01/18 03:07 #

    정신병도 질병이고 질병이 특수한 경우가 아니죠.
    특수한 경우는 오히려 건강한 경우죠.
    건강은 질병의 포로입니다.
    에일리언이 사는 행성의 인간처럼 건강은 질병에 곧 잡아먹혀버립니다.
    건강이 질병과 싸워 이긴 평화라고 느끼지만 그건 찰나일 뿐입니다.

    정신병을 야기하는 정신현상이 정신병자만의 현상이 아니라 모든 인간의 현상이고
    혹독한 아버지나 좋은 아버지도 똑같은 아버지이고
    아버지, 선생, 사장, 중대장, 하나님 아버지...도 똑같은 가부장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프로이트의 생각이죠.

    건강, 정상에 집착하지 마십시요.
    집착하니 원한 즉 피해의식이 생깁니다.
    니체에 의하면 원한을 넘어서 허무주의로 빠진답니다.
    허무주의는 집착을 부정하는 것이죠.
    니체의 대안은 치열하게 현실과 자신을 바로 보는 긍정입니다.
    순딩이는 긍정이 아니라 예스 걸 니체의 표현으로 나귀일 뿐입니다.
    또 윽박질렀다.
  • 투명장미 2010/01/19 18:17 #

    '니체는 억압의 굴레 속에서 왜소해진 인간들에 대한 근원적 연민을 끊임없이 표현한다. 그는 이 연약한 인간을 구제하는 것이 오직 가치의 전도와 새로운 도덕적 원리의 수립을 통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고맙습니다, 사과님.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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