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레슬러(The Wrestler, 2008) by 투명장미




9 1/2 Weeks에서 전세계 여자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그 남자. 미키 루크. 감미롭던 그의 얼굴은 어느 때 부터인가 망가지기 시작했었다. 한 때 곱던 배우의 몰락을 우리들의 눈으로 지켜본다는 것은 마음 아픈 일이었다. 관객들이야 실망하고 망각하면 그만이지만 배우 본인의 상실감은 죽음과 삶의 경계선에서 느끼는 고통을 당하였으리라. 얼굴로 승부를 보던 배우가 연기로 재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처럼 보인다. 사람들의 인식엔 우선 그 사람이 그 사람인 것은 얼굴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머리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레슬러를 보면서 미키 루크의 화려한 재기에 박수를 보낸다. 어려움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마음의 고통을 연기로 표현할 수 없다고 믿는 나는...그의 힘들었을 삶의 여정을 엿보는 것 같아 눈물겨웠다.

80년대 프로레슬러 랜디 "램". 레슬링의 시대도 가버리고 랜디도 늙어 버렸다. 콘테이너집의 월세도 잘 못내고 허리는 아파서 진통제 없이 살 수도 없고 주사를 맞고서야 역기를 든다. 늙어버린 랜디의 육체도 구슬프지만 레슬링의 세계도 구슬프다. 면도날로 일부러 이마를 찢어 피를 내고 관객들을 환호하게 한다. 사람이 얼마나 엊어맞고 터져야 피를 흘릴 수 있을까...레슬링은 피부를 칼로 그어 그 통증을 과장하고 관객에게 만족감을 선사한다. 관객에게 보이기 위한 쇼라는 점에서 레슬러는 일종의 통증을 감수하는 연기자들이다. "탁자로 맞은 것 괜찮아?" "괜찮습니다" 괜찮지 않으면 그는 프로도 아니고 밥벌이도 할 수 없다. 한보따리의 약을 사고 그 약으로 더 강해질 것이라 말하는 랜디...이 영화는 인생의 무시무시한 현실인데 무척 슬프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 온 랜디에게 더 이상의 무지개도 미래도 없어 보인다. 단 하나 남은 혈육인 딸도, 랜디의 진심을 바쳐 사랑한 것 같은 스트립 걸 케시디도 망가져가는 육신과 암울한 미래를 가진 순수하고,  남성적인, 과거의 인기 대스타 랜디를 사랑할 용기를 갖지 못한다.
"난 외톨이야, 난 벌을 받아 외톨이야" 인생이 그렇게 흘러가는 강이란 것이 랜디 한사람 만의 것일까.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아픈 것은 우리 모두가 결국은 우스꽝스럽게 염색한 노란머리로 힘있는 척 과장하며 온 몸에 일부러 상채기를 내어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박수갈채를 받으면 안 아픈 척 웃으며 살아 온 랜디와 다를 바 없다는 것 때문에 마음이 더욱 아파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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