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디와 루시 (Wendy and Lucy, 2008) by 투명장미



어두운 숲에 앉아 언덕 아래로 달려가는 기차를 바라보는 장면이 있다. 아무런 방비도 할 수 없는 공개된 공간이지만 세상과 동떨어져 안전하다고 생각되는 공간이며 아무 것도 가진 것 없는 힘없는 어린 여자가 몇그루의 나무의 그늘에 몸을 숨길 수 있다고 생각되는 공간이다. 굉음을 내며 달려가는 기차는 목적지를 갖고 있으며 그녀가 가고자 하는 알래스카행일 것이다. 알래스카에 가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사람들이 그러는데 거기는 괜찮다더라'는 이야기만 듣고 그 곳으로 가려는 그녀..왜냐면 딱히 있을 곳도 돌아갈 곳도 없는 그녀이기 때문이다. 기차소리 들리는 언덕배기 잡목 숲..언제 누가 찾아와 무슨 일을 당할 지도 모르는 도시에서 멀지 않은 숲이 그녀의 하룻밤 안식처이다.

웬디의 도움없이 한끼의 식사도 해결할 수 없는 루시가 있다. '똘망똘망한 눈, 친절해보이는 얼굴'의 웬디의 애견이다. 루시는 절대적으로 웬디를 사랑하고 충성을 바치지만 루시 또한 웬디에겐 무능한 존재일 뿐이다. 서로 사랑하지만 서로에게 아무 것도 해줄 능력이 없는..그렇지만 분명 둘은 사랑하고 있고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다.

지나가던 그 도시에서 만난 몇몇의 주변 사람들. 마켓 종업원, 마켓 지배인, 경찰, 자동차 수리공, 경비원아저씨, 개보호소 직원, 불량배..등은 우리가 만나는 인간군상들의 보편적인 성격들을 갖고 있다. 내게 다가오기도 하고 내가 찾아가기도 해야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그 인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지만 대부분 괄호 밖의 문제들이다.

웬디의 꿈과 돈계산. 착실하게 적는 가계부. 그리고 알래스카까지로의 여정.

알래스카까지만 가면 해결되는 확실한 어떤 것도 없다. 그러나 그곳으로 가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듯한 웬디와 루시 이야기. '아저씨도 착해보이고 정원도 좋고..' 그런 조건으로 위안이 되겠냐마는 웬디는 억지로 위안거리를 찾아내고 루시와 작별인사를 한다. 소식을 모르는 채 아무것도 모르는 채 헤어지는게 더 낫나..? 다시 만나 작별의 인사라도 나누고 지킬 수 없는 다시돌아올 것이라는 약속이라도 하고 헤어지는 게 낫나...둘 다 슬픈일이다. 왜냐면 웬디와 루시와 나의 인생 자체가 슬픔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덧글

  • 카이º 2009/07/02 15:05 # 답글

    굉장히 잔잔할 거 같은 영화네요 ㅠㅠ
  • 투명장미 2009/07/03 08:16 #

    등장인물도 몇 안되고 겉으로는 잔잔한데 마음이 많이 무거워지는 영화입니다.
    호러물 보다 더 호러스럽고..어떤 스릴러물 보다 더 스릴감이 넘치고..
    한마디로 스트레스짱입니다.
  • 조신한튜나 2009/07/03 11:54 # 답글

    헉 뒤끝있는 영화인가요
  • 투명장미 2009/07/03 15:50 #

    설정자체가 스트레스입니다. 가출한 소녀가 500달러 남짓 가지고 알래스카로 일자리를 찾아갑니다.
    느리고 지겨운 속도로 영화가 흘러가는데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고 많이 슬퍼집니다.
    잘 만든 영화예요. 뒤끝은 없는 영화인데, 희망의 여지도 없습니다. 암울하기 그지없죠. 크라이막스라기엔 조용하고 극적이라기엔 밋밋한 루시와의 해후가 있지만 그 또한 희망이 없어 밝아지지 않기는 마찬가지입니다.
  • 2009/07/04 12:4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투명장미 2009/07/05 06:46 #

    게재는 가능한데 본명은 그렇고 닉네임 <투명장미>나 아이디<bellecys>로 올리심 안될까요..
    좋은 하루 되시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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